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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의 8할을 읽을 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이 소설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건의 중심에 선 실비아는 다이아몬드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서야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란 걸 알아챘다. 현재와 과거와 대과거. 현재는 누구의 여자도 아닌 실비아와 과거엔 나의 여자였던 실비아. 그보다 전엔 다른 남자의 여자 실비아.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 사진을 찍는다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내 아내 실비아 옆에서 얼쩡대고 환심을 사더니,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공식적인 공간에 입성했다. 그리고는 아내와 다이아몬드, 둘 다 훔쳐 둘이 도주해버렸다. 언짢은 마음에 말다툼 끝에 아내를 때린 게 화근이었다. 아내는 나를 폭력이나 휘두르는 무자비한 인간이라 말했을 테고 보석을 들고 함께 도주하자고 그를 꼬드겼을 것이다. 반드시 실비아를 되찾고 보석도 찾을 것이다.
소설의 화자인 '나'의 의해 불한당으로 묘사된 실비아의 남편 빌쿠르의 시점으로 풀어보았다. 누구의 관점이든, 이런저런 사건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결국 실비아는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이쯤에서 드는 당연한 질문. 그래서, 뭐 어쨌다는 말인가? 대체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가.
제목의 ‘정의’는 20세기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기틀이 되었던 〈정의론〉과 그 저자인 존 롤스의 사상이다. 〈정의론〉은 1971년 출간과 동시에 정치철학의 강력한 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시대에 뒤처진 책이기도 했다. 롤스는 성장과 번영의 낙관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에 자신의 기본 개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의론〉이 출간되어 영향력을 확장하던 1970년대 초엔 이미 이런 조건들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스태그플레이션, 복지국가 해체, 민영화, 세계화, 신우파의 부상 등으로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현실적 가능성은 계속 좁아졌다. 저자는 책에 롤스의 영향(‘그늘’)을 받은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이 세계의 변화에 맞서 분투한 역사와 함께 그 성취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담았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가 한국 멜로영화의 정수라 불리는 까닭은 사랑을 운동(사건)이 아닌 시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사랑은 어떤 극적인 사건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 소소한 감정의 순간들이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기다리던 시간, 그리워하던 그때, 멀리서 나타날 연인을 기다리는 순간들 말이다.
'팔월의 일요일들'에서 중요한 건 사건이나 합리적 이성으로 풀어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외려 우리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그 여름 일요일 니스, 마른 강가의 햇빛과 유령처럼 떠도는 인물들이 불연속적으로 스치는 시간이라고 모디아노는 말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결함 가득한 이들이 등장하는 피카레스크의 변형 서사인가 싶더니, 다이아몬드 남십자성은 히치콕 영화의 맥거핀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물과 다이아몬드에 정신이 팔린 독자의 주의산만을 질책하려는 듯한 나른한 이야기. 그러나 작품의 진가는 다른 곳에 있었다.
2024년 10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102세 때 펴낸 책이다. 그는 의사이자, 의료운동가였다. 오랜 의사 생활과 인생 경험에서 깨달은 통찰을 전하는 동시에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삶의 태도를 설명한다. 자신에게 생기를 주는 일을 찾는 법, 막히는 일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는 법, 두려움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 등 6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도 제시한다.
언뜻 보면 ‘지당하신 말씀’인 것처럼 들리지만, 쿵 하고 가슴을 울리는 성찰이 여럿 있다. 가령 유년시절의 가장 기뻤던 순간을 떠올리고, 최근에 그런 느낌을 받은 일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이 그렇다. “내 기준으로 99세 이하면 모두 젊은 사람”이라는 저자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삶이 click here 할퀴고 지나간 내밀한 고통의 흔적을 오롯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타인을 위로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계 오스트리아 작가인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반영한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인종 문제와 소수자성에 대해 두루 질문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여느 소설과는 다른 결의 울림을 주는데, 이는 혼란을 극복하고 마침내 정체성의 뿌리를 발견하는 ‘디아스포라 소설’의 흔한 결말을 거부했기 때문일 터이다. ‘작가의 말’에 적은 문장이 이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 “나는 과거를 변형시키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묘사해서 이 선물에 합당한 대우를 하려고 했다. 이미 상처를 받고 혼란스러워했던 이들에게 자신들의 고통에 대한 결정권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작가 모디아노는 며칠 계속해서 비가 내린 어느 일요일 니스의 풍경을, 남편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도망친 여자와 그녀를 무턱대고 받아들인 주인공이 숨어든 장소를, 그러니까 낙엽 긁는 소리를 내면서 철책문이 열렸고, 어둑한 작은 길을 따라 입구의 유리판 위에서 전구 불빛이 비치는 별채까지 이어진 카파렐리 가의 생트 안 하숙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 정원에 있는 작은 헛간의 함석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종일 이 모양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 우리는 저녁이 오기를 기다려 외출했다. 낮에는 프롬나드 데 장그레에, 종려나무와 밝은 색 건물들 위에 내리는 비 때문에 마음이 쓸쓸하기만 했다. 비는 벽들을 적시고, 얼마 지나지않아 오페레타의 무대배경 같은 풍경과 과자로 만든 집 같은 색채들을 완전히 녹여놓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전등 불빛과 네온등 덕분에 그런 비탄의 기분이 가셨다."